
수림문화재단 기획전시
《화이트스페이스 White Space》
김도연, 노혜리, 문이삭, 한진
2024.11.27-2025.02.28
수림큐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4
월-토 12:00 - 18:00 (일요일, 공휴일 휴관)
기획·글 : 김선옥
그래픽디자인 : 마카다미아 오
공간디자인 및 설치 : 김연세
주최·주관 : 수림문화재단
수림문화재단은 오는 11월 27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 《화이트스페이스》를 수림큐브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사회 현상에 주목하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수림문화재단의 주제 기획전시이다.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이동’과 변화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시공간이 바뀌는 순간을 지각하기 어려워졌다. ‘번역’을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로 ‘이동’하는 시간이라 한다면, 번역 기술은 미래의 다른 언어가 도착하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우리는 어쩌면 언어들 사이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이트 스페이스(White Space)’는 일반적으로 공백을 뜻하는 단어로, 특히 그래픽 디자인에서 의도적으로 비어 있는 여백을 주어 시각적인 조화를 주는 기법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화이트 스페이스’는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지속시키는 장소이자, 전시에서 ‘감각’의 방식이 여전히 가능한지 질문하는 공간이다. 전시는 수림큐브 전관에서 진행되며, 1층, 지하, 2층, 테라스, 옥상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화이트스페이스(White Space)》에 참여하는 4인의 작가 김도연, 노혜리, 문이삭, 한진은 새로움과 속도에 천착하지 않되, 변주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술’을 고수하면서 감각을 확장한다. 이 방법론은 마치 번역이 다양한 문맥에서 달라지는 행위와 유사하다.
김도연은 개인의 경험이나 무의식의 심상을 설화와 우화 등의 이야기와 연결하고 중첩시켜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얇은 장지나 캔버스에 세밀하게 그린 작가의 세필화를 보면 얼마나 긴 시간 작업에 몰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혜리는 이주, 가족사 등의 사적인 서사를 집단적 기억과 정서로 확장하면서, 사물, 몸, 그리고 언어를 조합하여 낯선 풍경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작품과 연동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여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는 파편적인 이야기로 작가의 경험을 전달한다.
문이삭은 직접 산과 강에서 채취한 흙, 물, 부유물 등의 자연물을 사용하여 인공물(작업)로 변환시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작가는 오늘날 사물의 달라지는 위상을 고민하며, 조각의 조건을 다양한 조형 언어로 실험 중이다.
한진은 기억의 잔상에서 출발하여,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 대상이나 사라지는 감각을 시각화하여 주로 회화와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 과정에서 떠오른 장소와 대상을 찾아가서 실제로 그곳에 오래 머물고 응시하면서 체현한 감각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숲길을 걷다 잠시 붉은사슴뿔에서
2024
광목에 아크릴과 유채
167x261cm
While Walking Down the Forest path, We Stopped in front of Red Deer Antler
2024
oil and acrylic on linen
167x261cm


빛과 겹의 풍경
2024
광목에 유채
170x909.5cm
The Light over the Windows that Graze
2024
oil on linen
170x909.5cm
2024
광목에 유채
170x909.5cm
The Light over the Windows that Graze
2024
oil on linen
170x909.5cm




끝없는 텔로미어의 여행
2024
장지에 아크릴과 유채
116.8x91.0cm
Telomere’s Endless Journey
2024
oil and acrylic on Korean paper
116.8x91.0cm


구렁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0
금분지에 유화
264x78cm
A Story Told by a Snake
2020
oil on Korean gold paper
264x78cm



빛 찌꺼기 바라보기
2019
순지에 유화
148x71.5cm
Looking at the Afterimage of Light
2019
oil on Korean paper
148x71.5cm









알을 낳고 날아간 새
2023
장지에 유채
105x75cm
Who Laid the Egg
2023
oil on Korean paper
105x75cm
감이야기
2022
하네뮬러, 파브리아노에 에칭, 조에트로프(철프레임, 물레, 자작합판)
66x66x47.5cm / 20x30cm(10 pieces)
82x82x47.5cm / 20x30cm(12 pieces)
A Story of Persimmons
2022
line etching on Hahnemule, Fabriano, zoetrope
66x66x47.5cm / 20x30cm(10 pieces)
82x82x47.5cm / 20x30cm(12 pieces)




까끌까끌한 표면과 지글거리는 화면에서 오래 머물기
20세기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시인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는 「미래주의선언문」(1909)에서 “달빛을 죽이자!”고 이야기하며, 달빛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전통과 단절하고, 산업혁명 기계의 미학과 속도, 특히 전기에서 폭발적인 힘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에게 19세기 예술가들은 서정적이고, 달빛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으며,이들이 선호하던 사색적인 분위기는 배척당했다. 당대의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을 기술에서 찾았던 미래주의자들은 역동성과 생동감을 찬양했다. 기존 체계의 전복을 꿈꾸는 미래로의열망은 지난 시간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을 테다.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계의 운동성은 예술의 언어로 시각화되었고, 미래주의자들이 스스로 비판했던 일부 과거의 기법을 차용하기도 했다.
새로움보다 옛것을 선호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문화적 제스처를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옛것 선호 자체가] 급진적으로 새로움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움의 산출을 요구하는 문화적 규칙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이 옛것인지는 그 자체로 자명하지 않다. 모든 시대에 옛것은 늘 새로 발명되어야 한다. 1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 반드시 과거와 단절하는 것에서만 비롯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종종 과거의 관습이 복구되고 역전되면서 만들어진다.
한 세기가 지나서 현재까지 미래주의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급진적 운동의 이념을 강조하며 전쟁과 민족주의를 지지하고 폭력을 찬양한 점은 여전히 논쟁적이다.우리를 지금보다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 방향을 위한 움직임은 정녕 급격한 경사로 위에서만 가능한 생존의 전략일까? 모든 영역에서 이동과 변화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시공간이 바뀌는 순간에 지각하기 어려워졌다.
가령, ‘번역’을 어떤 언어(A)가 다른 언어(A’)로 이동하는 시간이라 한다면, 번역 기술로 인해 우리가 A와 A’ 사이를 지각하기도 전해 이미 다른 언어가 도래해 버리는 시대가되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 A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언어 A’로 바꾸는 시간의 차원에서 본다면, 번역은 시간을 종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매개하는 행위다. 또한, 번역은 단순히 언어뿐 아니라, 문화, 현상, 경험, 기록, 가치, 철학 등 유무형의 다양한 존재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의미를 바꾸는 유동적인 움직임이다. 미술 언어도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일련의 번역 행위로 생산된다. 작가의 고유한 언어에서 출발한 작업은 재료로 외양을 갖추어 이미지가 된 후에도, 전시마다 달라지는 새로운 맥락에서 변주를 반복하며 다양한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 미술 바깥 세계의 속도변화에 견주어 달라진/달라질 것인가?
《화이트스페이스(White Space)》는 변화의 과정을 사유할 시간이 점차 소멸하는 시대에, 전시는 여전히 감각과 사유의 시간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매체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화이트스페이스(White Space)’는 일반적으로 공백을 뜻하는 단어로, 특히 그래픽디자인에서 과잉의 반작용을 피해 시각적인 조화를 꾀하는 비어 있는 여백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화이트스페이스’는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유예시키는 장소이자,동시에 매끄러운 표면에서 금세 사라질 감각을 붙잡고 있는 까끌까끌한 표면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4인의 작가 김도연, 노혜리, 문이삭, 한진은 새로움과 속도에 천착하지 않되, 변주의 방법론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술’을 고수하면서 감각을 확장한다. 마치 번역이 다양한 문맥에서 고정적인 것을 유동적인 것으로 환원하려는 행위인 것처럼.
김도연은 종종 전시장에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벽화를 완성할 정도로 그리기 행위에 여전히 힘을 쏟고, 화면에 재료를 안착시키기 위해 손을 부단히 움직인다. 얇은 장지에 세밀하게 그린 그의 세필화를 보면 그의 지난(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내면에 잠재된 아직 펼쳐놓지 않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얼마나 (남아)있을지, 하물며 작가에게 서사의 완결은 과연 존재할까 궁금해진다. 김도연은 개인의 경험과 무의식에서 나온 감각적 심상을 주로 드로잉으로 연속적인 서사 형식을 만들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김도연의 세계는 매번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노혜리는 이민, 가족사 등의 사적인 서사를 집단적 기억과 정서로 확장하면서 오브제, 몸,언어를 조합하여 낯선 풍경을 만든다. 그의 설치작품은 단지 퍼포먼스에 종속된‘소품’(props)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퍼포먼스 또한 전시의 부대 행사로 전락하지 않는다. 두매체가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작가의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마치 퍼포먼스 기록 스코어(score)처럼, 그의 설치작품은 미래/과거의 움직임을 예비/기록하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작가에게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퍼포먼스는 휘발되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설치작품은 부동의 존재가 아닌 까닭이다.
문이삭은 흙을 소성하고 조형하는 과정에서 갈라지고 깨지는 것에 주목하여, 매끄러운표면을 위해 흙의 물성을 정제하고,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면에 드러낸다.손으로 재료를 빚고, 덧붙이기의 행위를 반복하며 형태를 만드는 ‘소조’의 방법론을 고수하며, 작가는 오늘날 사물의 위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조각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질문하고, 이것을 다양한 조형 언어로 실험 중이다. 그는 직접 산과 강에서 채취한 흙, 물, 부유물 등의 자연물을 사용하여 인공물(작업)로 변환시킨다. 산과 강의 일부분을 실제 재료로 사용하여 그것들이 구성하고 있는 대상을 재현하되, 작가가 경험했던 그 시점과 상황을 담고 있다.
한진은 작업 과정에서 떠오른 장소와 대상을 찾아가서 실제로 그곳에 오랜 시간 머물고 응시하면서 체현한 감각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그의 작업은 기억의 잔상, 언어, 개념 등에서 출발하여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 대상이나 휘발되는 순간, 혹은 사라지는 감각을 시각화한다. 작가의 작품명에 자주 등장하는 ‘Op.’는 ‘Opus’의 줄임말로, 클래식 음악에서 작품 번호를 매길 때 사용하는 기호이다. 주로 연작으로 동일한 제목에 번호를 붙이는 작가에게 음악은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특정 장소에서 경험한 감각을 확장할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화면 가득 느껴지는 운동성과 리듬감은 작가가 긴 시간 대상을 관찰하고 기다리며 깊숙이 응축해 놓은 집약체들이 분출되는 장면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작업은 구작과 신작이 섞이는 (재)배치의 행위로 존재한다. 일시적인 물질적 배열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제시하며, 전시는 작업의 개별적 의미를 유지하되, 다른 작업과 연쇄적으로 연결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배치의 행위성은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를 단순히 디지털에 반하는 오프라인 매체로 미디어에서 오용하고 있지만, 아날로그는 본래 연속적인 신호를 지칭한다. 아날로그 방식은 자료를 물리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긴 소요 시간이 필요하고, 노이즈가 발생하기 쉬우며,저장 및 전송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신호가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감각이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가까운 이유다.
아날로그 입자는 불규칙적이고, 입자 사이사이에 성글게 공간-‘공백’이 존재한다. 이미지 생성 AI가 아직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람 ‘손’의 묘사라고 한다. 2 《화이트스페이스》는 정제되지 않아 까끌까끌하거나, 고전영화의 지글거리는 화면처럼 미끈하지 않은 자리를 제안한다. 이 경험은 관람객이 몸을 움직여 무려 74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 1층-지하-2층-2층 테라스-옥상까지 다 둘러본 후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선옥(수림문화재단 책임 큐레이터)
1 보리스 그로이스, 「새로움에 대하여」, 김남시 역, 현실문화, 2017, pp. 16-17.
2 《화이트 스페이스》의 그래픽 디자인은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은 손가락과 얼굴을 통해 소통하고 번역하면서생기는 여백/빈 곳을 표현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작가 양윤화의 디자인 시안 제안서 참조) 전시 포스터의 굵은 입자의 질감은 아날로그적이다.
1F(R)
1층 오른쪽 전시장 한쪽에 크게 호(arc)를 그리며 천장에 걸려있는 <빛과 겹의 풍경>(2024)은 김도연이 뉴질랜드를 여행했을 때 캠핑카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그린 드로잉이다. 싱가포르 식물원, 뉴질랜드 궁전 등 작가가 실제 방문했던 장소와 관찰했던 대상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여 다양한 배경에 여러생명체가 혼종된 인물을 등장시킨 장면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실제 가보지 않았더라도 저 세계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숲길을 걷다 잠시 붉은사슴뿔에서>(2024)는 위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나방과 버섯인간, 사슴, 새를 소재로, 작가 자신의모습과 연결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령, 작업실 창가에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 작가의 얼굴에 핀 검버섯은 죽은 생물에서 자라나는 버섯과 연결된다. 작가가 버섯을 손질하다 만진 머리카락 속 흰머리를 발견하고 떨어뜨린 버섯은 부서져 가루가 되었고, 버섯의 가루는 나방의 인분과 흡사하다.김도연의 작업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명체와 작가는 한 화면 안에 생동하며 현실과 가상 그 어딘가의 세계에 존재한다.
B1(R)
참여 작가 4인의 작품이 함께 배치된 공간이다. 김도연의 <구렁이가 들려주는 이야기>(2020)는 작가가 아차산 근처의 작업실에서 지낼 당시 발견한 ‘고구려대장간마을’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예로부터전승된 고전 설화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 관심을 볼 수 있고, 금분지에 섬세하게 그린 두 쪽의 그림을 합친 작품이다. <빛 찌꺼기 바라보기>(2019)는 작가가 신체 통제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빛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웠을 때 희미하게 남은 빛의 잔상을 그린 기록이다.
2F(L)
2층 왼쪽 전시장은 김도연, 노혜리, 한진 작가의 작품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김도연의<감이야기>(2022)는 에칭화 10점, 12점이 각각 조이트로프(연속된 그림들이 붙어있는 원기둥을 돌리면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시 원리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장난감)에 붙어 있는설치작품이다. 할아버지 댁이라는 특정 장소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뒷마당에 감나무와 개를 키우던 옆집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동아시아 신화 인물 ‘성성이’와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날치 ‘비어’가 마치 기억을 소환하는 존재처럼 등장한다. 관람객은 직접 작품을 돌려보면서 대상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질병으로 인해 작가의 신체가 기억하는 세계는 초기작부터 최근까지 이어져,그것이 부재한 현재의 상태를 표현한다. <알을 낳고 날아간 새>(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