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Kim Doyeon

늙은 울라





“ 글을 먼저 읽으신 후에 세 번째 목판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






새벽이 오기 전 늙은 울라는 창문가에 앉아 있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창밖의 통나무 더미가 흰 눈에 덮여 갔다. 그곳은 조금 뒤 그녀의 화장터가 될 곳이었다. 폭설은 자정부터 시작되었고 이제 검은 것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은 울룩불룩한 흰 공이었다. 울라의 시선은 눈에 완전히 덮히지 않은 땅을 찾아 헤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들이 들판 군데군데 얼룩처럼 번져서 달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무릎을 덮은 코뜨개 담요는 그녀가 발을 까딱거릴 때마다 바닥을 소리 없이 쓸었다. 늙은 울라는 주름진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리고는 꼼지락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수리하듯, 엉킨 매듭을 풀듯, 허공을 정교하게 만지작거렸다.

늙은 울라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죽음 기술자는 새벽에 울라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울라가 미리 맡겨 두었던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목을 조르고 편안한 죽음을 선물할 것이다. 울라가 숨을 거두면 부츠에 발을 쑤셔 넣고 긴 끈을 묶은 뒤 현관 바닥을 쿵 하고 구를 것이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그녀를 통나무 더미 위에 얹을 것이다. 불을 놓으면 사방의 눈은 전부 녹으리라. 마을 사람들은 추운 집안을 피해 화장터에 나와 언 몸을 녹일 것이고 기분 좋은 허기를 느끼며 잉걸불에 고기와 곡식을 익힐 것이다.

울라에게 삶은 자질구레한 짐을 정비하기 위해 다리 사이에 잠깐 끼워넣은 허술한 자루 같은 것이었고 이 어색한 느낌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울라는 새해가 되자마자 죽음 기술자의 집을 찾아갔다. 죽음 기술자는 울라의 먼 친척이었다. 울라의 어머니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울라 역시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외삼촌 혹은 외할아버지 뻘일 그가 어떻게 자신보다 오래 살며 심지어 숨통까지 끊어놓을 수 있는지 울라는 의아했다. 그러나 살인자는 피살자보다 강인해야 하는 법. 죽음 기술자는 걸음이 느려지거나 숨을 거칠게 쉬거나 다리를 절뚝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사냥감의 목을 단번에 베어내는 믿음직스러운 사냥꾼처럼 죽음을 선물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아기처럼 죽음을 맞았다. 그의 품 안에서 죽음은 멀고 아득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분명한 하나의 예감이 되었다. 그는 잠을 깨우지 않고도 목을 조를 줄 알았다. 한 손으로는 죽어가는 자의 뒷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냘픈 목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살갗 아래, 죽음으로 가는 가장 빠른 문을 열어 재꼈다. 그의 손은 익어가는 반죽 같았다.

문제는 울라에게서 잠이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울라는 제정신으로 목을 졸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잠들기 위해 각종 약초를 달여 마시고 눈 위에 뜨거운 천을 얹고 눈 쌓인 들판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했으나 피로가 쏟아지기는 커녕 묻어두었던 잡생각들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답이 없는 질문을 지속했다. 손끝이 허공에 글씨를 쓰듯 꿈틀거렸다. 죽음에의 요청은 결코 물릴 수가 없었다. 겨울의 죽음은 특히 더 그랬다. 없는 식량을 모아 장례를 준비하는 데다 조상들이 이미 망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저씨가 오면 몇 가지를 물어봐야지. 아저씨는 어째서 늙지 않는지, 그 자신이 죽을 때는 어떻게 할 예정인지, 살인을 미룬 적이 있는지, 만약 죽음의 요청을 물린다면 어떻게 되는지, 목이 졸릴 때 고통스러운지, 시체를 화장한 뒤에는 잿더미에서 유골을 골라낼 수 있는지, 통나무의 재와 사람의 재는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녀는 궁금증이 샘솟는 자신을 어색하게 느끼며 융단처럼 검은 어둠이 엷은 푸른 베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새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점차 사라졌다. 창밖의 검은 통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하고 창백한 풍경이었다. 울라는 엄마 몰래 밤을 지새운 소녀처럼 화들짝 놀랐고 자신이 밤을 지새웠음을 영영 비밀에 부치고 싶어졌다. 그녀는 좀처럼 잠을 못 자는 법이 없었고 생애 마지막 날 처음으로 불면증이 찾아왔다는 데 곤란함을 느꼈다. 울라는 벌떡 일어나 무릎 담요를 반듯하게 개고 전등을 껐다. 전등 아래 의자를 받치고 올라 서서 찬 수건으로 전구를 감쌌다. 손 끝에 따가운 열기가 전해졌다. 아마 그것은 그녀가 불 속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느낀 뜨거움이었으리라. 무엇도 태우지 않을 정도의 뜨거움. 전구는 금세 식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밤새 곤히 잔 것처럼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아침 해는 해일처럼 날아들었다. 북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발을 가진 그는 주머니 속에 든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손장난을 하며 낡은 신발을 눈 속에 박아넣고 있었다. 울라는 먼 주머니 속 열쇠의 튀어오름을 느꼈다. 메마른 잠이 쏟아졌다.

김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