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Kim Doyeon

서른 여섯 명의 정직한 인간*





“ 글을 먼저 읽으신 후에 네 번째 목판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




가장 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이들의 역할은 점점 오염되어가는 세상에 맞서 선의 최소량을 지키는 것이요, 세상이 파멸하지 않도록 신에게 인류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조는 죄수라고 전해진다. 그는 최초의 악한 인간이었다. 악한 인간은 늙고 병든 농부의 가마니에 구멍을 뚫었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사냥덫을 놓았으며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해충을 풀어놓았다. 사람들의 오금을 세게 쳐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절벽에 매달린 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으며 사슴들의 옹달샘에 독을 풀고 여자들이 목욕하는 연못에 가재와 개구리를 풀어두었다. 새를 키우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새들의 목을 비틀고 고양이들의 수염을 뽑고 개들의 목줄 안에 보이지 않는 가시를 박아 넣었다. 말의 항문에 옻나무 가지를 쑤셔넣고 돼지의 꼬리에 불을 붙였으며 수탉의 벼슬을 잘라버렸다. 착한 사람을 붙잡아 해먹 위에 묶어놓고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빙빙 돌렸다. 누군가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라도 하면 상대편 칼집에 납땜을 했다.

어느 날 신의 사자들이 악한 인간을 찾아왔다. 그때의 신들은 시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 무엇이든 귀찮아 했고 육 일간 잠을 자고 하루 동안 잡다한 일을 몰아서 처리하곤 했으므로 아무도 악당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악행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소문이 뻗어나가 잠자던 신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신의 사자들은 그를 밧줄로 꽁꽁 묶고 사막과 협곡 너머 지하 감옥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악한 인간이 넘어질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이게 네가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의 빛이다. 네가 마지막으로 맞는 빗방울이다. 이게 네 마지막 넘어짐이다. 네가 지하 감옥에 갇히면 나방처럼 미동도 없이 서서 늙어 죽을 테지.”

그는 며칠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 탓에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허옇게 드러났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지난 삶을 뉘우쳤다. 그리고 신에게 기도했다. 절실히 기도한지 백 일째 되던 밤, 꿈속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한 인간아.”

악한 인간은 그것이 신의 목소리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신은 말했다.

“내가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내가 불과 물로 세상을 벌주려 할 때에 네 자손들은 내가 너희를 파멸하지 않을 이유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너희는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되고 자기만의 것을 가져서도 안 된다. 또한 네 자손들은 서른 여섯으로 충분하다. 서른 여섯보다 적으면 너희는 나의 기쁨이 되기에 모자랄 것이고 서른 여섯을 넘으면 너희는 너희의 본분을 잃게 될 것이다.”

꿈에서 깬 악한 인간은 앞섶이 축축하게 젖는 것을 느꼈다. 젖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수염에 흰 젖이 묻어 방울방울 떨어졌다. 신의 사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악한 인간은 기적이 일어난 땅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는 혼자 임신해 아이를 낳아 길렀다. 자신의 자식뿐 아니라 소와 돼지, 개와 고양이에게도 젖을 물렸다. 땅 위를 기어다니는 땅벌들과 병아리를 위해 젖을 뿌려주었다. 모두가 그의 젖먹이였다. 악한 인간은 자신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과 결혼했으며 그의 딸과 아들이, 딸과 딸이 서로 결혼했다. 악한 인간은 어머니이자 남편, 시어머니이자 장인어른이 되었다. 악한 인간의 자손들은 무럭무럭 자라 마을을 일구었다. 다만 이들은 이기심을 피하기 위해 열 살이 넘으면 모두 혼자 살았다. 따라서 마을에는 딱 서른 여섯 개의 집만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듬성듬성 서 있었으며 잉여 작물들은 모두 구덩이에 넣어 태워버렸다.

서른 여섯 명의 머릿수를 맞춰야 했으므로 자식들은 악한 인간이 숨을 거두기가 무섭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장례식은 숨가쁜 유성생식의 축제가 되었다. 그들이 지겹도록 섹스를 하는 동안 세상은 각종 재난과 폭력으로 휘청였다. 그러다 서른 여섯 번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은 다시 잠잠해졌다. 서른 일곱이나 서른 여덟 번째로 태어난 아이들은 잉여 작물들과 함께 태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잠시 아이를 죽이는 것이 악한 일은 아닌가 의심했지만 이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분부가 따로 없었으므로 규칙을 따르기로 했다.

문제는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한 배에서 두 명이 태어나는 경우를 처음 보았고 둘 중 누가 서른 여섯 번째이고 누가 서른 일곱 번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쌍둥이의 엄마는 아무리 추궁해도 누가 먼저인지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명의 아이는 꼭 한 몸인 것처럼 똑같이 생긴 데다 똑같이 말하고 행동했다. 사람들은 쌍둥이를 두고 밤낮으로 토론했다. 마치 엉덩이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를 두고 다투는 바보들처럼 잠도 자지 않고 언쟁을 벌였다. 마을은 두 편으로 나뉘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인들은 ‘쌍둥이 반쪽설’을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쌍둥이는 두 사람이 곧 하나다. 0.5+0.5=1 따라서 머릿수는 서른 일곱일지라도 서른 여섯과 마찬가지다. 둘 중 한 명을 죽인다면 마을 사람들은 서른 여섯 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른 다섯 하고도 반이 되는 것이다. 이후 아이 한 명이 태어난다면 마을은 서른 여섯 하고도 반 명이 될 것이다. 둘을 하나로 치지 않으면 이후에 태어날 아이들을 셈할 수도 없을뿐더러 신의 뜻을 0.5씩 거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는 원로들은 ‘진짜가짜설’을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쌍둥이 중 한 명은 진짜고 다른 한 명은 복사품이다. 0+1=1 둘 중에 1초라도 먼저 태어난 아이가 마을의 적자이며 이후에 태어난 아이는 잉여 산물이므로 규칙대로 처분해야 한다. 또한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머릿수를 센다면 분명 서른 일곱일 것이므로 오해를 살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분란이 발생한 것 자체가 서른 여섯이라는 수를 어겼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마을에는 내전의 기운이 감돌았다. 두 편으로 나뉜 마을은 오래 전 악한 인간이 그랬듯이 서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신의 뜻을 구하러 산에 올랐던 마을 원로였다. 팔다리는 뒤틀려 있었지만 눈빛은 형형했으며 입에서는 끔찍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부상자에게 달려갔으나 그 앞에서 감전된 듯 멈춰 섰다. 죽어가는 원로의 모습을 본 순간, 드디어 마을이 서른 여섯 명으로 완성되었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사람들은 싸우느라 지쳤고 피로했고 평화를 원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아무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대신에 기꺼이 절규와 신음을 견뎠다. 그것은 듣는 이의 영혼을 피폭시키는 소리였으나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행동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벼들이 사각거리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뻐꾸기와 산비둘기, 후투티와 귀뚜라미가 제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장례식을 준비했다. 서로의 죄의식을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움직였고 가진 중 가장 어두운 옷을 꺼내 입었다. 성교하지 않는 첫 번째 장례식이었다. 서운한 성기 속에서 기다란 공허가 자라났다.

김연재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